제목: 동구릉


등록일: 2011-04-09 13:14h:548
사진가: 박미연 * http://www.aldus11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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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릉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던 조선왕조의 왕들도 그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이 있다.
518년간 27명의 조선의 왕들이 남긴 왕릉들 40개가 2009년 6월 30일 세계 유네스코 지정 유산에 등재되었다.
그 중 경기도 구리에 9개의 왕릉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동구릉’에서 왕들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살펴보자.

동구릉’의 왕릉들 중에서 필자의 눈길과 마음을 이끄는 곳은 따로 있으니, 문종(文宗)의 왕릉인 ‘현릉’이다.
현릉은 ‘건원릉’이나 ‘목릉’처럼 아름답거나 예술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그래도 ‘현릉’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문종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슬픈 사연들 때문이다.

세종대왕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나이인 8살에 세자에 책봉되고 37세에 왕위에 올랐지만
재위 2년 4개월 만에 사망을 한 문종에게는 3명의 여자가 있었다.
14세에 혼인한 첫 번째 희빈 김 씨는 사술(邪術)까지 동원해가며 문종의 사랑을 얻으려다
세종에 의해 폐위되고, 두 번째로 혼인한 순빈 김 씨는 동성애 시비에 휘말려 폐위 당하였다.
문종은 세 번째로 권근의 후손인 현덕왕후를 맞이해 아들을 낳았으나
현덕왕후는 산후병으로 다음날 죽게 되고, 후계 구도가 복잡해지는 것을 이유로,
문종은 이후 11년 동안 세자빈 없이 생을 마친다. 단명한 현덕왕후 권 씨가
문종의 마지막 부인이었고 여복이 없었던 문종으로서는 사랑하는 아내를 11년간 그리워했을 것이다.

문종의 아내 현덕왕후는 20세에 세자빈에 올라 단아한 성품으로 종친의 사랑을 받았으나,
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다음날 동궁의 자선당에서 24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후에 더욱 기구한 운명에 처하게 되니, 사후에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는 사건에
어머니와 동생이 연루되어 처형되면서 함께 폐위되어 종묘에서 신주가 철거되고,
경기도 안산에 안치되었던 현덕왕후의 소릉은 파헤쳐져 바닷가에 장사지내는 수난까지 당하기에 이른다.
중종 때 복위되어 현릉의 남편 옆에 묻히기까지 사후 7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망부가(亡夫歌)를 그치게 된다. 후에 호사가들이 전하기를 문종과 현덕왕후의 무덤 사이에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능역이 시작되자 저절로 말라 죽어
두 능 사이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니 웬만한 러브스토리는 울고 갈 일이다.

아비와 어미의 사연만으로도 이토록 가슴 저리게 아픈데 그 자식의 사연은 더더욱 절절하니
바로 아들 단종의 이야기다. 11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세조)의 야욕에 옥쇄도 내어주고
스스로 선왕의 자리로 물러나기까지 했지만, 세조는 조카인 단종을 귀향에만 그치지 않고
결국에는 사약을 내리기까지에 이른다. 항간에는 조카 단종이 ‘어찌 숙부가 준 사약을 마실 수 있겠냐’ 하며
방안에서 스스로 줄을 목에 매어 밖에서 하인에게 당기게 하여 자살하였다고 한다.
당시 그의 나이 겨우 16세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그의 왕릉인 ‘장릉’에서
멀리 떨어진 부모를 그리는 단종의 넋이 마냥 측은하게만 느껴진다.

태조 이성계는 생전에 계비 신덕왕후와 함께 묻히기를 원해 ‘정릉’에 자신의 묏자리까지 마련해두었다.
하지만, 아들 이방언(태종)과 계비인 신덕왕후와의 갈등 때문에 신덕왕후는 능이 도성 밖으로 쫓겨나고
태조 이성계는 지금의 자리에 홀로 묻히게 되었다.

조선조 최장수 임금인 영조역시도 원비인 정성왕후와 ‘서오릉’에 함께 묻히기를 원했지만
손자 정조는 선왕의 유언보다는 왕조의 안녕을 위해 지금의 장소에 왕릉을 세웠고 영조의 옆에는
계비 정순왕후가 29년 후에 옆에 모셔졌으니 눈치 때문에 정성왕후를 그리워하지도 못하고 있는 꼴이다.
태조와 영조의 서글픈 망부가도 안타깝지만 문종과 현덕왕후와 단종의 애달픈 가족사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

동구릉은 조선왕조의 왕릉 전시장으로 여려 형식의 왕릉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혼자나 연인의 손을 잡고 오붓하게 거닐기에도 좋지만 하루 3차례 진행되는 문화유산 해설사의 이야기와 함께
왕릉을 돌아본다면 그 또한 동구릉의 매력에 빠지기에 충분하다.
원릉과 경릉에서 주변을 바라보면 동구릉이 왜 명당자리인지를 바로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풍광이 좋으며
목릉에서 보는 풍광 역시도 그에 못지않다. 경릉 뒤편으로는 자연학습장과
야생화단지 및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촬영지등 볼거리가 많다.

사진 촬영은 잔디의 녹색이 번져버리는 낯 시간 보다는 오전 이른 시간이 좋다.
동구릉은 오전과 오후의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한 사람은 아침 일찍 사진을 촬영한 후,
문화유산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왕릉을 체험하고, 점심식사 후 인근 주변을 관광하면
유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여행월간지 'Life & Travel'에 2009년 11월호에 기고한 글 갖고 왔답니다.

동구릉 홈페이지 (http://donggu.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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